
신라 문성왕 17년(855)에 출생하여 고려 태조 20년(937)에 입적한 진공대사의 탑비로 고려 태조 22년(939) 왕명으로 건립되었다. 비신은 해중석이라 한다. 위 아래와 오른편이 파손된 것을 별석으로 채웠다. 비문은 왕명으로 최언위가 글을 짓고 이환추가 글을 썼으며, 최환규가 각자를 하였다. 구양순체 해서로 쓰여졌는데 뒷면은 진공대사의 유계를 별도로 새겼다.
구부는 다소 둔중한 감이 있고 새김도 규모에 비해 얕은 편이며 비좌도 낮은 편이지만 귀갑을 연속된 육각형으로 나누고 내부를 비늘문양으로 채워 조식이 많은 용두형의 귀부이다.
이수는 산 모양으로 양 모서리의 파손이 심하다. 다소 도식화된 운룡문이 얕게 새겨졌고 하단은 여의두문을 돌렸다. 전면 중앙부에 곽을 내고 고진공대사비를 전서로 새겼다. 진공대사(855∼937)의 속성은 김씨, 신라의 왕계 확종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설씨로 가야산에 입산하여 선융에게서 중이 되고 경문왕 14년(874) 가야산 수도원에서 구족계을 받고 삼장을 연구하였다.
탑비는 붕괴되어 전해오던 것을 1972년 지금의 형태로 복원한 것이고 보법탑은 비로사 인근의 부도골에 있던 것을 비로사 경내로 옮겨왔다가 분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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